유니브페미 강령



우리는 새로운 대학을 건설할 페미니스트다.


오늘날 대학은 온갖 차별과 혐오의 온상이다. 이성애 규범과 젠더 이분법 아래에 놓인 대학은 이 규범을 유지하기 위해 차별과 폭력을 묵인하고 재생산한다. 여성은 성차별의 대상이 되고, 성소수자는 규범을 벗어나는 존재로서 배제당하며, 이러한 차별적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혐오의 대상이 된다.


대학에서 페미니즘 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은 붕괴해가는 대학 공동체의 현실과 격화되는 백래시 앞에서 난관에 부딪혀왔다. 그럼에도 각 대학에서 험난하게 싸워야만 했던 페미니스트들은 함께 모였고, 그 자리에서 경계를 넘어서는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제 우리는 대학의 경계를 넘어 고립된 페미니스트들을 연결하고, 대학 당국과 학생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페미니스트 공동체를 선언한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우리는 가부장제와 결별할 것이다


여성에게도 대학 진학의 문이 열리면서 한때 대학은 모든 구성원의 평등이 보장되는 공간으로 상상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배적인 사회 구조를 답습하면서 다양한 구성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대학은 한 번도 진정으로 ‘모두’를 위한 공간이었던 적이 없다.


여성을 욕망해야만 진정한 남성으로 승인받을 수 있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욕망을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예외가 아닌 일상적 행위로서 정당화된다. 여성을 향한 혐오는 대학의 가부장제적 규범을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한 발판이다.


이성애 규범 혹은 젠더 이분법을 벗어나는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도 대학 내의 가부장제적 규범을 안정화하는 데 마찬가지로 이용된다. 이들은 존재 자체로 이성애 규범과 젠더 이분법의 허상성과 취약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이유로 가장 먼저 배제당한다.


두 가지 혐오는 인위적으로 구성된 규범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공모한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차별과 폭력은 규범이 오작동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규범 자체에 내재해있다. 따라서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규범의 안정화나 정상화가 아니라, 혐오의 근간이 되는 이성애 규범과 젠더 이분법 자체의 해체이다.


우리는 대학을 모든 구성원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 것이다. 이제 대학 내 가부장제와의 결별을 선언할 때가 왔다.



우리는 대학을 바꿀 것이다


우리는 학교 당국의 시스템을 변화시킬 것이다. 학교 당국이 성폭력 가해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대신, 적절한 처벌을 내리고 피해자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이를 위해 학내 독립성과 구속력, 충분한 전문 인력과 재정 지원을 확보하여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인권센터가 필요하다.


학내 구성원이 편안하고 안전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여성 화장실 불법 촬영 범죄에 대해 철저한 예방과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고, 월경하는 모든 구성원을 위한 월경용품 무상 보급, 월경 휴가, 월경공결제가 보편화되어야 한다. 이분법적인 사회에서 불편을 느끼는 구성원을 위해 젠더 이분법 규범을 그대로 따르는 학적부와 공공 화장실의 개편 또한 필수적이다.


우리는 누군가 폭력을 경험하거나 존재를 부정당했던 공간을 새로운 의미로 채울 것이다. 우리가 바꿀 대학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모든 구성원의 실질적인 권리와 안전을 보장할 것이다.



우리는 학생사회를 바꿀 것이다


여성 동급생들을 성적 대상화하는 강간문화, 폭력적인 술자리 문화, 나이주의·군사주의·학벌주의를 기반으로 한 배제적인 집단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평등하게 관계 맺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새로운 자치 공동체가 시작될 것이다.


정치적 결단을 포기한 학생회는 변화해야 한다. 정치적 중립 혹은 시혜적 수준의 인권만이 표명될 때 가장 먼저 공동체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언제나 소수자들이었다. 학생회는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구성원들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젠더 감수성을 기반으로 구성원들을 위한 성평등 정책을 고민하고 시행하는 것은 학생 대표자의 의무이다.


페미니스트의 안전한 학내 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 대자보 무단 훼손과 성평등 기구에 대한 부당한 폐지 요구 등 페미니즘에 대한 탄압은 구성원이 자유롭게 학내에서 활동할 권리를 빼앗고 있다. 평등한 학생사회에서는 페미니스트가 차별받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며, 성평등 기구가 필요한 활동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어온 학내 구성원들과 함께하겠다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우리가 바꿀 학생사회는 정치적 행동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누구나 온전히 소속될 수 있는 평등한 공동체일 것이다.



대학에서 페미니즘은 상식이 될 것이다


이성애 규범과 젠더 이분법을 해체하고 평등한 사회를 상상하기 위해서 우리에겐 페미니즘 정치가 필요하다. 젠더를 기반으로 사회를 해석하고 변화를 추동하는 힘은 페미니즘 정치에만 주어져 있다.


대학의 변화 또한 페미니즘 정치에서 시작된다. 페미니즘 정치는 차별과 폭력의 단순한 지양을 넘어 실질적인 평등을 요구함으로써 일상을, 대학을, 나아가 사회를 바꿀 것이다.


유니브페미는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로서 대학 페미니즘 정치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다. 우리는 대학의 경계를 가로질러 서로의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고 연결될 것이다. 함께 모여 싸우는 우리가 존재하는 한, 머지않아 대학에서 페미니즘은 상식이 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대학을 건설할 페미니스트 공동체다.



2019년 9월 7일 유니브페미(준) 창립총회 <중력을 넘어서>에서 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