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인정하라 -배우 주진모의 반쪽짜리 인정에 부쳐-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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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인정하라 -배우 주진모의 반쪽짜리 인정에 부쳐'의 썸네일로, 배우 주진모의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다.

인정하라

―배우 주진모의 반쪽짜리 인정에 부쳐―


지난 10일, 배우 주진모와 장동건의 카카오톡 대화 내역이 해킹되어 온라인에 퍼졌다. 여성에 대한 외모 품평과 음담패설, 모욕, 성매매로 의심되는 정황이 드러났지만 소속사는 ‘연예인 사생활 유출 피해’로 사건을 명명하며 해킹 범죄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언론 역시 주진모가 해킹을 당한 ‘삼성 클라우드’의 취약한 보안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소속사의 입장을 받아썼다. 그로부터 잠잠했던 6일 뒤인 어제, 주진모는 유출된 대화 내역이 본인의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피해 여성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해커의 공갈·협박에 불응한 ‘정의로운 피해자’의 자리에 자신을 위치 지으며 핵심은 사생활 유출 피해임을 강조했다.


사건이 알려진 후 여러 대학의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게시되었다. “주진모는 피해자”, “요즘은 얼평도 못하는 세상이라니... 나땐 남동기들 전체가 따로 단톡파서 순위매기고 그랬었는데...”, “주진모 장동건이 봉사해준 느낌 ㅋㅋ”, “주진모는 그냥 주어진 능력껏 산거지”, “성인 남자 둘이서 여자 얘기도 못함?” 관련 기사 댓글 창의 상황도 비슷하다. 1)남자들끼리 “여자 얘기”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점 2)특히 “능력 있는” 남자라면 그럴 수 있다는 점 3)“몰래” 찍은 사진이나 영상이 아닐 거라는 점 4)단톡방이 아니라 일대일 대화방이었다는 점 5)실질적인 차별이나 폭력을 가한 게 아니라 말, 다시 말해 ‘표현’이었다는 점 등에서 주진모는 죄가 없다고 합세한다.


실제로 주진모는 공식 입장문에서 “저는 결단코 이성의 신체 사진을 몰래 촬영하여 유포하는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반쪽짜리 인정이다. 불법촬영 및 유포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음담패설과 여성 비하가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을 운운하며 해킹 범죄의 피해자로만 남기를 택하는 것은 마치 해킹을 당하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거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들키지 않았다고, 현행법상 범죄가 아니라고 ‘아무것도 아닌 일’ 취급해온 결과를 우리는 이 사회에서 끊임없이 마주하고 있다. 성폭력이 줄지 않는 사회와 평화롭지 못한 소수자들의 삶이 그것이다. 언제나처럼 범법한 사실에 대해서만 인정하면서 법의 이름으로 으름장을 놓는, 반쪽짜리 인정을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


주진모, 장동건처럼 모이면 “여자 얘기”를 하는 게 당연하다는 뭇 남성들이여, 인정하라. 당신들이 매기는 점수와 순위 속에 사람으로서 여성은 없다는 것을. 사진으로 전시되고 파편화된 여성, 당신들의 마음대로 움직이는 여성은 현실이 아닌 망상 속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그러니 한 번도 여성을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여긴 적이 없는, 당신들의 빈곤한 세계관을 부디 인정하고 변화하라. 우리는 지금 범죄 여부를 떠나 주장하고 있다. 당신들의 그 믿음은 거짓이자 착각이고, 오만이라고. “여자 얘기”가 일개 유희거리로 여겨지는 한 당신들이 부르짖는 ‘여성 상위시대’는 허상일 뿐이다.


2020년 1월 17일

유니브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