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동일성이라는 가상의 울타리 바깥에서 ― 트랜스젠더 신입생들의 입학을 환영하며

20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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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성이라는  가상의 울타리 바깥에서 ― 트랜스젠더 신입생들의 입학을 환영하며 ―


동일성이라는 가상의 울타리 바깥에서

― 트랜스젠더 신입생들의 입학을 환영하며 ―


2, 4, 6이라는 숫자는 언제나 1, 3, 5보다 뒤에 온다. 2020년에도 명징한,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에 녹아 있는 젠더 위계는 차별과 폭력을 낳고 있으므로, 2, 4, 6에 해당하는 이들을 위해 설립된 여대의 존재가 ‘역차별’이라는 외부의 주장은 말소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여대 재학생이 확실하게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것은 2, 4, 6 중 하나의 숫자일 뿐이라는 점에서, 여대가 그 자체로 동질적이고 안전한 공간이라는 믿음 역시 착각이다.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의 모습이 고정적이지 않은 것처럼, 여대의 구성원도 각기 다른 경험과 정체성, 가치관을 지닌다. 또, 학생 이외에도 교직원이나 청소·경비 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완전한 동일성의 확인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안전은 ‘같음’을 종용하는 방식이 아닌 서로의 다름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도록 노력되는 순간에야 비로소 형성될 수 있는 감각이다.


여대에서 트랜스젠더는 ‘충분히 안전한’ 학교에 감히 침범한 침입자로 여겨진다. 대학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다수의 구성원과 다른 모습으로 상정되는 소수자에게 폭력이 집중된다. 가상의 단일한 정체성에서 멀어질수록 이러한 폭력의 대상이 된다. 시스젠더 여성이라도 각각의 모습이 다르듯, 트랜스젠더의 모습도 모두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성혐오적 존재’라는 낙인이 찍힌 그들은 학내 커뮤니티에서 지속적으로 타자화된다. 트랜스젠더뿐 아니라 단일하지 않은 모습을 지닌 모든 이들이 커뮤니티 안에서 이러한 타자화의 과정을 겪는다. 여남공학 대학에서 페미니스트는 “페미는 정신병”, “페미X들 빨리 다 뒤졌으면”, “응 페미 안 사”, “페미 총살하고 싶음”, “이러다 페미들한테 학교 넘어간다” 등의 말로 조롱받고 공격받는다. ‘충분히 공평한’ 학교에서 불필요한 분란을 일으키는 부외자로 취급되는 것이다. 타자를 향한 폭력은 모순적이게도 안전과 공평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된다.


이제 텍스트 속의 납작한 묘사에 누군가의 삶을 가두지 말자. 단일한 정체성에 대해 함부로 상상하는 것은 그만두자. 차라리 다름을 맞닥뜨릴 때의 공포와 불안, 낯섦을 직시할 수 있다면 그 감정들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규명하는 과정의 고민과 대화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안전을 감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 3, 5라는 숫자가 아니라 1, 2, 3, 4, 5, 6이라는 구획과 순서매김에 집중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스스로와 서로를 검열하고 재단하는 관계가 아니라 무엇이 그러한 검열과 재단을 낳았는지 함께 질문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바깥으로 쫓겨날지 알 수 없는 울타리는 이만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헐어내고, 서로 다른 모습을 한 존재들이 나만큼 특별하고 그만큼 평범한 구성원이라고 믿어지는 세계로 나아가자. 우리는 동일성이라는 가상의 울타리 바깥의 특별하고도 평범한 모든 신입생들을 환영하는 페미니스트다.



2020년 2월 5일

유니브페미